파리의 내밀한 감성 표현한 흑백사진

대도시 파리의 내밀한 감성을 역동적인 시각을 통해 형상화한 이갑철의 사진전이 열린다. 작가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파리의 생동성을 정적인 흑백사진으로 표현했다. 문의 02)720-8488


기간 2008-12-03~2008-12-16 장소 갤러리 룩스


도시의 혼(魂)

이갑철은 신작 파리(Paris) 사진을 통해 대도시에 대한 자신의 내밀한 감성을 특유의 역동적 시각을 통해 형상화시켜내고 있다. <충돌과 반동>, <에너지> 전에서 천착해 왔던 기(氣), 신(神), 혼(魂) 등 무형이되 생을 주재하는 근원적인 요소들은 이번 작업에서도 저변을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국이라고 해서 생명이 다를 수는 없는 것이다. 전작에 주로 등장했던 토속적인 소재들은 이번 작업에서 자취를 감추고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큰 변화를 말하지는 않는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어떤 대상을 보느냐가 아니라 대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대도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은 여전히 전작에 흐르고 있었던 바로 그 시각인 것이다. 피사체의 힘에 의탁하지 않고 자신의 시각을 지켜낼 때 대상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대상을 보더라도 같은 방법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시각의 힘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해석하는 대도시 파리는 어떤 모습인가. 파리는 대도시의 형성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문화적 감수성이 가장 일찍 싹튼 곳이다. 비좁고 불편한 도로가 확장, 정비되어 도시적 편리함이 생겨나고, 더럽고 불결한 인구밀집 지역에 상하수도 시설이 들어서 깨끗한 주거환경이 조성되는 등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삶의 공간이 대도시 파리였다. 생활환경의 변화는 곧바로 새로운 감성을 부르는 법이지만, 도시의 변화 속도는 새로운 감성이 그것을 곧바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라 이제 도시적 감수성은 새로움에 대한 무기력한 수용이 되고 그것은 다시 새로움에 대한 갈망으로 귀착한다. 그것이 보들레르의 도시적 감수성의 일면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옛 것에 대한 향수는 새로움에 대한 갈망 속에 잠재되어 있어 새 것을 빠르게 수용하는 감수성에는 새 것 자체에 대한 드러나지 않는 증오가 섞여 있다. 그것이 벤야민의 감수성이다. 옛 것과 새 것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대도시 파리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전통과 현대의 현기증 나는 조합이 어쩌면 이방인인 작가에게도 그렇게 비쳤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작가는 도시의 곳곳에서 그 조합 속에 감춰진 생의 기운을 본다. 그것을 도시의 혼(魂)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작가가 보는 것은 북적이는 사람들이나 빠르게 지나다니는 자동차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도시의 역동성이 아니라 정적 속에서도 기를 발산하는 모든 물질들의 생명이다.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여신의 조각이나 광고 입간판, 포스터에서도 생명은 은근히 퍼져 나온다. 밤거리를 빠르게 지나가는 여인들, 고혹적인 눈길로 행인을 응시하는 광고 이미지 속의 여인도 그렇다. 작가는 깜박거리는 신호등이나 공중에 매달려 있는 정체 모를 장식품에서도 도시의 혼을 본다. 그것은 도시의 구석구석에 널려 있는 것이어서 이름 모를 골목이나 창밖의 풍경, 사람들의 발걸음, 밤거리의 네온 싸인 등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작가가 감지해 낸 도시의 혼은 어딘지 모르게 섬뜩하고 스산하여 파리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교란시킨다. 유령과도 같은 형체로 성당 앞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이나 산 사람처럼 진한 우수에 빠져있는 포스터 속의 형상, 마치 공중에 매달린 것처럼 보이는 목 없는 사람의 자태 등에는 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혼이라는 것이 본래 생명의 경계를 넘어서 있어서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처럼 대상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무형의 신(神)이나 기(氣), 혼(魂)과 씨름하는 작가의 한결같은 시각이 어떻게 확장되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 박평종 ( 미학, 사진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