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hours

김인숙展 / KIMINSOOK / 金仁淑 / photography

2008_0611 ▶ 2008_0817 / 월요일 휴관



김인숙_HeeSa-22/09/2003_디지털 프린트_60×90cm_200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_09:00am ~ 06:00pm / 월요일 휴관




광주시립미술관 어린이갤러리
GWANGJU MUSEUM OF ART
광주광역시 북구 박물관로 48번지
Tel. +82.62.510.0700
artmuse.gwangju.go.kr






차별과 편견을 넘어 ● 김인숙 작가의 『sweet hours』展은 '우리학교 학생들의 맑은 눈빛'에 관한 전시이다. 우리학교 학생들의 맑고 깨끗한 눈빛을 우리나라 학생들과 어른들에게 널리 전하고 싶은 이유로 이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김인숙 작가가 찍은 기다오사카조선초중급학교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촬영한 사진작품 50여점과 스틸 영상 1점이 출품된다. 초중등 학생을 대상으로 8년간 촬영을 한 사진작업이다. ● 김인숙 작가는 아이들의 맑은 눈빛과 웃음을 담았다. 미국식 자본주의 경쟁 체제 속에서 우리가 놓친 우리민족의 원형질이 이 사진들 안에 있다. 남북의 대결상황이 놓쳐버린,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의 가치가 이 사진들 안에 있다. 우리가 지키고 사랑해야 할 우리 아이들이 이 사진들 안에 있다. 김인숙의 『sweet hours』展은 차별과 편견에 대한 고발이자, 이념과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인간애에 대한 예술적인 호소이다. ● 한국사람들은 보통 아이를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학원을 보내고, 자기 아이가 특목고를 가서 남보다 좋은 대학가고 남보다 잘 살기를 바라지만, 우리학교 아이들은 서로 공부를 도와준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우리 조선말(한반도의 말)을 제일 귀히 여긴다. 공부 못하는 친구를 도와주고, 다리 다친 친구를 웃으며 업어준다. 왜 이러한 것들이 가능한가?




김인숙_boys-24/09/2006_디지털 프린트_100×67cm_2006


우리학교 아이들의 밝고 깨끗한 눈빛은 우리나라의 교육이 본받아야 할 미래적 대안이다. 일본학교 교사들이 우리학교 참관수업을 하면 학생들의 밝고 깨끗한 눈빛에 놀란다고 한다. 아이들의 태도도 따뜻하고 힘차고 당당할 뿐 아니라, 집단적 교육과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개성이 다양하다고 한다. 급우를 보살펴주는 따뜻함에 놀란다고 한다. 그러한 모습들이 김인숙의 사진 속에 오롯이 담겨져 있다. ● 그런데 전시설명을 하기가 힘들다. 학생들이 어떻게 이렇게 맑은 눈빛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학교의 역사와 배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시설명문에 딱딱하고 누추한 역사를 나열하는 것이 부끄럽다. 당신은 ‘우리학교’를 아십니까? ● ‘우리학교’란 일본에서 재일동포를 대상으로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문화를 가르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교육기관이다. 즉, 우리 한국에서 무심히 말해버리는 소위 ‘조선학교’다. 북한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니는 그 조선학교다. 한국에서는 조선학교라고 3인칭으로 말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우리학교라 부르고 있다. 우리 한국인들이 말하는 3인칭 화법에는 ‘무관심’이 내포되어있다. 미움보다 더 하급인 무관심. 그러나 무관심은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한국에는 그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오해와 편견이 있다. ● ‘우리학교’에는 ‘조선적(朝鮮籍)’을 가진 동포이건, ‘한국 국적’을 가진 동포이건, ‘일본 국적’을 가진 동포이건 누구나 다 다닐 수 있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재일동포 중에는 북한의 정식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 소유자, 즉 북한사람은 없다. 일본은 1965년 한일조약으로 한국만을 정식국가로 인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에, 재일동포 중에는 북한 국적이 없는 것이다.




김인숙_boys-16/05/2006_디지털 프린트_67×100cm_2006



김인숙_girls-28/06/2001_디지털 프린트_47×70cm_2001


‘조선적(朝鮮籍)’이란 무엇인가? 조선적(朝鮮籍)은 1945년 해방 후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 가운데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적을 갖지도, 일본에 귀화하지도 않은 이들에게 부여된 일본 외국인 등록제도상 편의상의 적(籍)이다. 일본 측 공식 해석으로는 `구 조선호적등재자 및 그 자손(일본국적을 보유하는 이는 제외) 가운데 외국인등록상의 국적표시를 아직 대한민국으로 변경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 다시 말해, 패망한 조선왕조의 기호에 불과한 ‘조선’을 국적으로 가진 재일교포들은 북한(공화국)이나 남한(남조선) 둘 중 어디 하나도 택하지 않은 국제법상 난민들인 것이다. 그들이 온갖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조선적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일본 극우세력의 살해협박과 사회적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학교를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들이 조선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남한(남조선)이나 북한(북조선) 어디 한쪽에 속하지 않는 통일된 조선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사람이기에 조선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사람이기에 조선학교를 다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인숙_HeeSa-11/03/2007_디지털 프린트_90×60cm_2007


그러나 한국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마음을 찢어놓는다. 왜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습니까? 그게 편하지 않습니까? 왜 한국국적을 택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북한사람입니까? / “나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조센진(朝鮮人)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자란 사람이요, 조선사람이란 말이요. 내 국적란에 조선이라는 말은 조선사람이라는 표시일 뿐이죠.” / “한국에도 조선일보, 조선호텔, 조선대학교가 있잖아요. 우리가 국적란에 쓰는 조선이라는 의미는 조선일보의 조선과 똑같아요. 그런데 왜 북한 국적이라고 오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건 조선일보를 북한 사람이 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것과 똑같지요.” ● 이념과 민족과 국가의 공통점은 차별과 편견이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 지역·우리 국가·우리 민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국인을 차별하고 동포들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본다. 사회가 극단적인 도덕적 불감증에 빠질 경우, 또는 부패한 소수집단이 그 사회의 여론을 조절하고 지배할 경우, 차별이나 편견 따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 단위의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 우리를 비롯한 세계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 불행하게도 그 차별과 편견은 외국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같은 민족 또는 같은 국가 내에서도 존재한다. 차별과 편견은 텃세와 이기심이라는 공통된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학교는 조선인임을 지키고자 하는 우리 동포들이 세운 학교이고 조선어로 된 교과서를 가르치는 학교이다. 당연히 일본 문부성에서 발행한 교과서로 배우는 우리 동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학교 학생들의 맑은 눈빛, 그리고 우리 한국인의 무관심과 오해 사이에 깊은 여울이 숨어있다. 한국에서 편하게 사는 우리들이 일본에서 차별 속에 사는 재일교포들을 무지(無知)라는 탈을 쓰고 또 다시 차별을 한다. 일본인들이 경멸조로 말하는 조센진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동포를 포기하는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




김인숙_sweet hours展_광주시립미술관_2008


우리학교 학생들의 밝고 따뜻한 마음은 참교육에서 나온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똘똘 뭉치고 서로 아껴주는 마음이 기본으로 되어있다. 서로 아껴주는 마음, 이것보다 더 교육적인 것이 어디에 있는가. 학부모와 교사와 학생들이 하나가 된 학교.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우리학교이다. 역사의 비극 때문에 탄생했지만, 비극 속에 꽃핀 아름다운 학교이다. ● 김인숙은 기다오사카조선학교 출신이고, 할아버지가 일제시대에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고, 아버지가 ‘조선적’이었고, 어머니가 일본인인 재일교포 3세이다. 김인숙의 국적은 어디일까? 김인숙의 정체성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질문은 쓸데없는 것이다. 그녀의 국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든, 대한민국이든, 또 한국사람들 말대로 편하게 일본 국적을 가지든,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우리학교 출신 격투기 선수 추성훈(성인이 되어 일본국적을 택함), 우리학교 출신 축구선수 정대세(성인이 되어 한국국적을 택하나, 북한의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뛰고 현재 일본 J리그에 소속됨)는 일본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고, 어쩔 수 없이 한쪽의 국적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이나 한국을 택하지 않고 온갖 불이익을 받으며 조선적을 가지고 있는 동포들도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그들은 우리학교 출신이고 밝고 따뜻한 교육을 받았으며 언제나 하나된 조국을 그리워한다는 점이다. ● 김인숙은 자신의 특수한 경험을 통하여 차분하고 있는 그대로 우리학교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아무도 조선학교를 모르던 2000년도부터 이 아이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였다. 있는 그대로 보아달라는 정당한 항의였다. 그의 사진에는 차별과 편견에도 불구하고 밝고 깨끗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다. 그의 사진을 보고 한국과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 아이들 덕분에 내일의 세상은 좀 더 밝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꿈을 가지게 된다. 이 아이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 김인숙의 사진이 차갑지 않고 따뜻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피사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작가의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결과로 말하지 않고 과정으로 말한다. 세계를 바라보는 건강한 시각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부디 그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전시를 통해 간접적이나마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한국에도 우리 동포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변길현




김인숙_sweet hours展_광주시립미술관_2008


이 전시는 어떠한 이념·민족·국가에 대한 호불호, 시비를 따지고자 하는 전시가 아니다. 국적이 없는 우리학교 학생들의 맑은 눈빛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주요 목적이다. ● 우리는 그것을 북한의 저고리라 하지만 아니다. 북한의 저고리가 아니다. 그들은 1945년 이전인 조선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니는 것이고, 더 정확히는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인 한복을 교복으로 입고 다니는 것이다. 일본에 있는 우리학교의 한복이 서민적이라면, 한국에 있는 민족사관고의 한복은 귀족적이라는 차이밖에 없다. 만약에 당신이 우리학교의 치마저고리를 북한추종세력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한평생 무지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 한국이나 일본을 국적으로 택하지 않은 재일동포들의 국적은 없다. 그들은 국제법상 1910년 패망한 왕국인 ‘조선’이라는 기호를 가진 난민들이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주일연합국총사령부(GHQ)는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에게 한일합방이전의 국적을 돌려주었으나,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리면서 어느 한쪽도 택하지 않고 일본에 거주하게 되면서 그들은 ‘조선’이라는 기호를 가진 난민이 되었다. ● 슬픈 역사. 해방 후 이승만정권은 재일조선인들을 지원하지 않았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정권은 1965년 한일조약에 의해 오직 일본과 수교한 ‘한국’을 택한 조선인만 한국인으로 인정하겠다면서 재일조선인의 지위와 전후배상요구를 포기하였다. ● 반면에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재일조선인들은 약칭 공화국으로 부른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적으로 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일본과 수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처음부터 옛 조선의 기호를 가진 사람들을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동포들이라고 보고 조선인들을 지원했고 한국은 안했을 뿐이다. 대다수의 재일교포들이 친북적 성향을 가지게 된 근본 이유이다. ● 조선적 소유자들은 난민이기 때문에 외국에 나갈 수 없다. 당연히 일본 내 대기업이나 공무원이 될 수도 없다. 일본의 사회보장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우리학교’는 자체로 만든 우리말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하기에, 일본 문부성이 만든 교과서와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과 일본만큼 다른 것이다. 일본 내 ‘우리학교’는 일본에서 정식학교로 인증 받지 못하기 때문에 검정고시를 거쳐 일본의 대학시험에 응시하여야 한다. 치마저고리를 찢는 등 일본 극우세력의 살해협박은 거의 매일 행해지고 있다. ● 나에게 우리학교 아이들의 맑은 심성을 알려준 김인숙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의 미술관 상영을 허락해준 김명준 감독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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