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Soon Lee) 사진전
2008년 8월 12일 ~ 8월 29일 갤러리 눈
 

오는 8월 12일부터 29일까지 청담동 네이쳐포엠에 위치한 GALLERY NOON에서는 사진작가 Soon Lee의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오랜 시간, 지속적인 사진작업을 통해 구현된 그녀만의 독자적인 색채언어와 감수성이 만들어낸 최근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도심 한복판에서 자연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만나게 되는 자연;한국의 산은 기존 풍경의 답습적 범주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산 속에서 청량한 바람을 깊이 들이마시고, 짙은 나무내음과 숲 내음을 직접 들이키는 듯한 마술적인 경험인 것이다.

작가의 철학적 심연이 담겨있는 ‘깊은 블루’를 통해 생성된 Soon Lee의 산은 평화와 고요, 너그러움을 내포하는 동시에 자연의 본성인 생동성이 그 안에서 태동하고 있다.

금번 전시를 통해, 지리멸렬한 여름날 서정적이고도 서사적인 Soon Lee의 산 기행 속에서 물아일체(物我一體)를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Soon Lee 의 사진_ 빛의 편애로 드러난 산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자연은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를 보여준다고 했던가. Soon Lee의 사진 속 자연/산은 보여주면서도 사실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산의 재현이나 기록이라기보다는 온전히 보여줄 수 없는 그러나 분명 보이는 산의 모습에 대한 일종의 자조적인 시선이다. 역광을 받아 온통 단일한 블루 색조 속에 묻힌 산은 선과 면으로만 자존한다. 평면에 자연이 만든 유기적이며 더러 기하학적인 선들만이 몇 겹으로 흔들린다. 산 속에 산이 있고 산과 산이 겹치고 선과 선이 녹아들며 면과 면이 발처럼 드리워져 있다. 흡사 수묵으로 물든 산수화나 죠셉 알버스의 사각형 안의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색면 추상, 마크 로스코의 진동하는 색 층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보는 듯하다. 단순하고 정적인 구성에 단일 색채, 미니멀 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사진은 빛이 편애한 산의 표면이다. 밝고 어두운 약간의 층 차가 거리를 만들고 산과 산을 분절시키고 떨어뜨려 놓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산은 평면적으로 동등하다. 좀 더 화면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훑어나가다보면 하나로 보이는 산 안에 여러 산이 들어있고 그 안으로 나무와 풀들이 희미하게 몸을 내민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 다시 산의 세부는 지워지고, 흐려지고 산의 능선들이 지렁이처럼, 뱀처럼, 책상 모서리처럼 지나간다. 산들이 어디론가 몰려가다 문득 멈춰서서 자기 몸의 자태를 일순 선으로 드러낸 형국이다. 자연이 만든, 산이 저절로 그려낸 이 드로잉은 하늘과 맞닿는 접점의 상황을 알려주는 한편 관자로 하여금 산의 내부를 상상하게 한다. 작가는 지상에서 차올라 일렁이다 멈춰선 경계, 선을 사진으로 담았다. 또한 블루의 색상은 산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기존의 시각에서 자유롭게 비상시켜 무한으로 이어지며 또 다른 풍경으로 나아간다. 산의 천태만상을, 빛에 의해 수시로 까라지면서 다가오고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 모습을, 계절과 시간의 흐름, 기후 변화에 의해 명멸하는 그 모습을 온전히 사진으로 저장할 수 있을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사실 매우 오랜 고민이었을 것이다. 자연은 저 스스로 만들어놓은 무심하고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절묘한 조화로 그저 온전하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것들이 지니는 부실함과 추함을 죄다?덮고 유유히 머무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를 순간 절망과 궁핍함으로 내몬다.

 
Soon Lee는 남한 땅 이곳저곳에 순한 짐승처럼 드러누운 산들을 찍었다. 온통 블루로 적셔진 이 산은 걸어가다 눈에 들어온 산의 능선을 무심히 잡아당긴 결과들이다. 산은 또 다른 산과 연계되어 있고 그 산은 다시 다른 산과 산으로 이어져있다. 이 땅의 모든 산들은 혈관처럼 연결되어 융기되고 부풀어 오르다 멈추고 다시 이어져 바다로 나가 멈추어있다. 산들이 그친 자리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논과 밭을 일구면서 잠시 유한한 생을 부려놓을 때도 산은 사람과 집들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보호한다. 그리고 산은 모든 것을 품고 모든 것을 내주며 들어오는 이들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산을 어질다고 여겨 인(仁)이라 칭했다. 한국의 자연은 ‘산 너머 산’이다.

산은 일찍이 숭배의 대상이자 종교적 도량, 미의 결정이자 천상계로 연결되는 사다리, 부단한 수양차원의 여행 목적지, 죽어 묻히는 곳이자 살아 신선이 될 수 있는 장소였다. 그 산과 함께 한 생의 이력들이 한국인의 삶이었다.


?더 이상 밝아지거나 어두워지기 전까지의 정지된 어느 순간에 이 산은 멈춰있다. 그 산들은 선으로, 면으로, 색채로만 응고되어 있다. 그 미명의 공간에서 선은 면이고 면은 입체며 입체는 또한 선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저 산은 무수한 관계의 미학이다. 선은 밝은 면으로부터 어두운 면으로 내려 깔리고, 어두운 면은 밝은 면과의 대비를 통해 부피와 무게를 얻게 된다. 저 혼자만으로는 선도 면도 부피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산은 기억하고 있다. 이산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하염없는 곡선, 산의 살덩어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곡선을 향유하게 한다. 그리고 그 선은 무심하게 수락하는 자연의 너그러움에 맞닿아있다.

 
풍경은 지금의 자기와 눈앞의 세계가 만날 때 태어난다. 이 세상 속에 존재하는 자신과 자신이 대면하는 세계를 ‘나’와 ‘너’의 관계로 규정함으로써 발생한다. 따라서 풍경은 무엇보다도 관계의 미학이 되는 셈이다. 풍경은 단순히 자연의 투사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하여 인간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이미지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풍경이라는 현상에는 자연이라는 물리적 실체와 그것을 시각상으로 포착하는 사람, 이 양자의 존재가 서로 조응해서 만들어진 그 무엇이다. 그래서 풍경체험은 단순히 외계사물의 시각상 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몸과 표정을 읽는 것이다. 풍경화, 풍경사진이란 바로 그런 미세한 기운, 호흡, 생명, 모든 만물의 감촉, 섬세한 주름까지도 잡아내고 이를 형상화하는 지난한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는 주변의 산들을 바라보고 그것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런데 그녀가 찍은 산은 고정된 대상으로 출현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모습으로, 상황으로 연기된다. 시간과 기후에 따라 산은 무궁무진한 변화를 보여주면서 생성 중이다. 산이 살아있다. 풍경이 호흡하고, 낄낄거리고, 흐느끼고, 침묵하면서 그렇게 존재한다. 내 앞에 존재하는 ‘산’은 단 한 번도 똑같은 모습으로 보여진 적이 없다. 사실 자연은 단 한 순간도 고정되어 있거나 불변으로 자리한 적은 없다. 늘상 시간 안에 있고 바람과 공기에 희희낙락하는가 하면 움직이는 몸, 수없이 다양한 몸(눈)에 비치고 보여지고 스치기를 거듭한다. 유장한 가락, 운율처럼 풍경은 부유하고 동요한다. 초현실적인 세계 아니면 꿈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하다.


사진의 톤은 가라앉고 조용하다. 그녀가 다루는 대상들은 서로 닮아 있다. 작품의 톤은 한결 가라앉았고 분명히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을 찍은 사진임에도 명확하게 장소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가 찍은 사진 속의 산은 매우 낯익은 풍경이면서도 어디인지 알기 어렵다. 현실적이지 않고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산을 낯설게 보여준다. 자연을 대상으로 이를 사진으로 찍는 다는 것은 단지 자연이라는 것을 몇몇 특정한 소재로 국한해서 분리시키고 절개하거나 박제시키는 일이기보다는 그 자연이라고 일컬어지는 인간을 둘러싼 외부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연관되어 보인다. Soon Lee의 산 사진은 결국 작가에 의해 이해된 자연/산의 한 모습이다. 표면과 심층의 분열이 순간 무화되어 번져 나오는 독특한 사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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