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자유로운 삶의 방정식 -사진작가 김중만-

영화 '접속'에서 조금은 쓸쓸하게 들리던 Pale Blue Eyes를 기억하는지...., 주제가보다 더 내 마음속에 잔잔하게 남아있는 멜로디....

바로 The Velvet Underground 의 곡이다. 김중만씨의 스튜디오 이름이기도 한 Velvet Underground....

어찌 보면 그 음악에서 느껴지는 쓸쓸함과 고독함이 그의 작품에도 스며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스튜디오 이름에 대해 물어보니 원래 앤디오홀이라는 화가를 좋아했는데 그 사람이 회화, 그래픽, 사진, 음악에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다방면에 작업을 하고 영향을 끼치던 그 사람이 만든 그룹이 바로 Velvet Underground란다.

그래서 스튜디오 이름을 그렇게 짓게 되었다는데... 그의 묘한 분위기에 너무나 걸맞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초에 스튜디오를 열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중만씨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사진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70년대 프랑스 니스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기숙사 친구가 암실작업을 좀 도와 달라고 하더군요, 처음으로 인화하는 작업을 보게 된 건데 인화시간이 5분 정도 밖에 안 걸렸어요. 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미지가 나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그 점이 맘에 들었어요. 단순하게 속도성에 매료된 거죠.

그 당시 제가 작업을 하던 서양화는 대략 3개월 정도 걸렸으니까 비교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사진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어요. 급한 나의 성격과도 잘 맞았고, 처음엔 그렇게 단순하게 시작을 해서 26년간 사진을 하고 있죠.

처음에는 단순히 속도에 매료가 되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사진을 계속하시는 건 사진의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일 텐데, 어떤 점이 좋으세요?
궁극적으로 사진을 한다는 것은 기록의 개념이라고 생각을 해요. 초기에는 그림을 미리 그려서 사진을 찍었어요. 그림을 그리듯이 사진을 찍은 거죠. 그러다가 1985년 이후 사진이 나 자신의 생각과 삶의 한 부분을 기록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진의 목적이란 좀더 나은 인간성을 갖게 하는 길이라고 여겨졌고, 그런 점이 좋아요.

서양화를 전공하신 것이 사진작업에도 영향을 끼치는지요.
초기에는 그림과 사진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어요.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업을 했고, 사진을 찍기 위해 밑그림을 그리기도 했고요. 그런데 점차 사진과 회화의 영역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후 정사진을 시작하게 되었죠. 창의적인 사고생산에는 회화가 사진에 보탬을 줄 수도 있지만, 그다지 큰 연관성은 없다고 생각해요.


한창 인기있는 사진작가였을때 돌연 활동을 중단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진작업을 하면서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럽에서 사진을 시작해서 많이 배웠거든요. 유럽과 비교했을 때 미국의 사진은 어떨까...하고, 미국시장에 대한 관심이 늘 있었거든요.
자연스럽게 나가게 된 거 에요. 소위 잘나 간다고 할 때 거기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공부를 하고 나를 더 다지는 계기를 갖고 싶었죠.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공부도 하고, 계속 사진 작업을 했죠. 내가 작업한 사진을 들고 직접 갤러리를 찾아다니면서 전시를 부탁하기도 했고, 전시회도 했고, 무명으로 돌아갔어요. 그 당시 한국에서는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미국에서 저는 무명의 동양사진작가 엤을 뿐이잖아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다시 활동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처음 미국으로 갈 때 4년 정도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만큼 공부를 하고 돌아왔고, 그 정도 기간이면 미국시장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리고 저는 활동을 중단하고 시작하고 그렇게 보지 않아요. 지역적인 것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의 사진작업은 계속 연장선에 있었어요. 유럽에서, 한국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사진은 계속 하고 있었으니까...


아프리카 여행 후 사진집을 냈는데 어떤 계기로 아프리카 사진을 찍게 됐나요?
미국생활을 마치고 부모님을 뵈러 아프리카에 갔어요. 처음 계획은 2달 정도 부모님 옆에 있다가 오는 것이었는데 도착한 다음날 1999년 1월 1일 가지고 있던 모든 장비를 도둑맞았어요. 정말 황당했죠.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고민을 하다가 아프리카가 나를 붙잡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5년 정도 된 꿈이 있었거든요. 그게 바로 아프리카의 동물사진을 찍는 것이었어요.

지금이 내가 그 꿈을 이룰 때다.. 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장비를 다시 구입을 하고 아프리카 사진을 찍었어요. 아프리카 사진은 그야말로 모험과 도전이었지요. 9개월간 찍었는데 위험하긴 했지만 단 한번도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동물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 일은?
1999년과 2000년 여름에 작업을 했어요. 거의 2년 동안 작업을 한 거죠. 처음 사진을 찍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사자 10m앞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정말 겁도 없이 그 앞에 선거죠. 나중에 알았는데 사자가 100m을 4초에 달린다더군요. 저는 사자와 0.4초 거리에 있었던 거죠. 그 당시의 기분은 정말 짜릿했어요. 아무도 그 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환희는 모를 겁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동물사진을 찍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 기분 덕에 그 뒤로도 두려움없이 동물들을 대할 수 있었지요.
패션작업을 주로 하시는데 패션사진의 장단점은 무엇일까요?
장단점을 구별할 수가 없어요. 같이 적용이 된다고 보는데, 동물이나 풍경사진의 경우는 혼자 작업을 하는 거잖아요. 자기의 주관적인 사고나 생각, 시각만으로 작업을 하는 반면에 패션사진이나 인물사진은 공동적인 작업이에요.

특히나 패션사진의 경우 옷을 찍는 작업이라서 디자이너의 의도도 충분히 파악해야 하고 헤어나 코디, 모델, 에디터와 더불어 그들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 표현을 해야 하죠. 그런 점이 어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어떤 건가요?
풍경사진을 찍게 된 경위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1975년부터 85년까지는 주로 인물을 찍었어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림을 바탕으로 한 만들어진 사진을 찍었거든요.

그러다 1985년에 그 당시만 해도 제 국적이 프랑스였는데 국가에 사전신고없이 전시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추방을 당하는 일이 있었어요.

추방을 당하고 풍경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LA길거리에 외등 짜리 차가 올라오는 사진을 찍었어요. 지금까지 찍은 사진 중에 내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보여져서 가장 그 사진이 기억에 남는군요.

사진은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 구분을 짓기 모호한 것이 Fine art가 아닐까 싶어요. 예를 들면 패션도 일종의 Fine art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Fine art와 상업사진의 영역구분은 creativity가 보장이 되느냐에 따라 나누어진다고 생각해요. creativity가 보장이 된다면 그것이 어떤 사진이든 Fine art라고 할 수 있죠. 단지 시안에 따라 그대로 만들어지는 사진은 상업사진이 되는 거죠. 나는 creativity가 보장이 되는 사진만 찍고 있어요. 에디터가 제시하는 기본 concept는 공동작업중의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그것이 완성 작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내가 하는 작업은 Fine art로 볼 수 있죠.

선생님의 사진철학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진이란 삶의 기록이에요. 삶의 한 부분, 또는 전체를 기록해주는 역할을 담당하죠. 사진을 한 다는 것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고, 그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삶의 기록을 하는 것이에요. 본인이 얼마만큼 삶에 대해 접근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는 좋은 사진을 할 수가 없어요. 기본이 갖춰지고 더불어 창의력을 높이는 사고와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하죠. 진실된 것을 살아가면서 일궈내야되고 그것을 결국은 사진이 기록으로 남기게 되겠죠.

사진가로서 또는 한 개인으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하시는 건 어떤 점인지..
사진철학에서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인데 진실성, 리얼리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유로운 사고를 갖는 것이지요. 틀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려는 창의적인 사고와 자유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해요. 자유롭다는 것과 방종은 엄연히 구별이 되어야겠죠. 무절제란 그 어떤 것보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거니까요. 자유라는 것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세가 되어있어야 하죠.



작업에 영향을 준 작가가 있다면?
초기에는 미국작가인데 랄프깁슨이라고 패션사진을 찍는 사람이에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그 외에도 몇몇의 작가들이 있는데 그들의 창의력과 사진이 지니는 힘이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어요...너무 매력적이죠. 그들의 창의력은 진실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요.진실 안에 있는 창의력만이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가들입니다. 저도 그런 사진을 찍으려고 계속해서 노력 중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사진을 하면서 힘들다고 느꼈던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힘들 때마다 사진이 있어서 힘든 부분을 이끌어 주었죠. 처음 시작했을 때는 무작정 사진이 좋기만 했어요. 너무 좋아서 작업을 했고, 중반에는 좀 자만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은 사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그 마음으로 작업을 해요. 여러 일을 거치면서 겸손한 마음도 갖게 되었고, 사진의 소중함도 새삼 깨달았죠. 한번도 사진이 나에게 있어서 부정적인 적이 없었어요. 그렇기에 지금도 힘든 것도 모르고 사진을 할 수 있는 거겠죠.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사진계가 가장 고쳐야 할 점이라 생각되는 부분은?
아직 한국은 신생국가 에요. 유럽이 200년 미국이 100년 가까이 사진의 역사가 있는 것에 비해 우리는 아직 5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우리는 현재 뿌리를 내리는 단계 에요. 뿌리 내리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죠. 좋은 뿌리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지금 우리가 느끼는 문제점들은 우리 스스로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는 극복해야 하고 또 극복 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보고 있어요. 성급한 사람들은 뿌리도 내리지 않았는데 벌써 열매를 얻으려고 하고 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잖아요. 지금 상황은 우리가 성장하는데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과정 아닐까요. 우리의 입장과 처지를 제대로 알고 노력을 해야해요.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은?
사진책 시장 형성에 주력을 하려고 해요. 이것도 뿌리내리기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 우리나라는 사진책 시장형성이 그다지 되지 않았어요. 출판계의 사정도 있지만 사진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에도 문제가 있어요. 아직 그 필요성을 서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진책은 정말 중요하거든요. 젊은 작가들에게 다양한 루트를 제공해줄 수 있고, 일반인에게도 간접 경험의 기회를 줄 수 있잖아요. 몇 권의 책을 접하는 것보다 많은 책에서 고른다는 것은 그 효과가 엄연히 다른 것이죠. 사진을 대중화시키고 싶어요.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을 볼 수 있게 해줄 수도 있고, 작가들에게도 자유롭게 작업을 하고 그것을 알릴 수 있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사진을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사진은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에요. 시작하기란 쉽지만 그것을 계속해 나가기가 어렵죠. 좌절과 포기가 다른 것에 비해 빠르고 쉬우니까요. 나 역시 아직까지도 프린트를 할 때 원하는 것을 얻기가 힘이 들어요. 계속 노력을 해야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나 만들 수가 있으니까 힘이 든 작업이죠. 그리고 적절하게 자기 자신의 능력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비판도 할 줄 알아야죠. 과대평가나 과소평가가 아닌 중립적인 사고가 필요해요. 자신을 제대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하고 끊임없이 인내로 극복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좌절을 극복하는 사람만이 좋은 사진가가 될 수 있죠. 선천적인 끼는 필요가 없다고 봐요. 굳은 의지와 노력이 다른 어떤 것보다 필요하고 중요한 거죠. 냉정하게 보면 사진가는 기술자일뿐, 아티스트는 아니거든요. 사진의 기본바탕은 기술력이거든요. 기술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해서 기술을 터득하고 그 바탕 위에 창의력이 가미될 때 비로소 아티스트가 되는 거죠. 기술없이는 사진을 할 수 없어요. 꾸준히 자신을 극복하고 이겨내려 하는 마음가짐과 노력정신이 중요해요.